중간납기건담에 대한 중간 감상 약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드 시리즈가 죽을 쑨 이유는 스토리에 대한 캐릭터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건담이라는 것은 대저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내던져진 인간 군상을 그리는 것이 그 알파이자 오메가인 문화상품인데 시드는 이러한 밸런스를 깨고 캐릭터를 세계관 및 스토리의 우위에 놓는 실험을 했던 것 같다(물론 그 결과 스토리에 캐릭터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캐릭터의 운명에 스토리가 끌려가는 희한한 경우가 되고 말았지만). 그 결과 건담으로서의 시드는 죽고, 캐릭터로써의 키라나 라크스만 살아남는 기형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중간납기건담은 이러한 시드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름 절치부심한 걸로 보이긴 하는데, 이번엔 시드와는 정 반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스토리는 괜찮은데 캐릭터들이 개성이 없다."

중간납기건담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 어딘가에서 한 번씩 본 애들이다. 게다가 그 어딘가 라는게 대부분 W이고, 제대로 가져온 것도 아니고 죄다 다운 그레이드라는 것도 문제고. 세츠나는 아무리 봐도 소스케 아니면 히이로의 중간납기 버전이고 마리나는 리리나 베이스에 라크스를 조금 섞은 듯한 모양새고. 처음엔 샤아의 중간납기버전인 줄 알았던 그라함은 이건 가만 보니 샤아가 아니라 젝스다(그게 그거 아니냐고? 좀 다르다). 초반부에 그나마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록온도 갈수록 캐릭터가 망가지는 느낌이고.

요컨대 중간납기건담의 제작진은 우주세기의 완성도는 이미 재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제쳐두고, 90년대 이후 나온 건담들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칭해지는(호불호가 극과 극인 턴에이는 제외) W의 베이스에 시드의 캐릭터를 접합함으로써 건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보려고 했던 걸로 보이는데, 현재 스코어는 형만한 아우 없다고 스토리의 정합성이나 오오라 면으로는 W에게 딸리고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시드에게 안 된다. 게다가 일본애들 특유의 흐리멍텅한 현실감각도 단단히 한몫 하고 있는 것 같고. 이대로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면, 아마 MS 디자인 밖에 남는 게 없는 시리즈가 되진 않을지.

가끔은 건담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건담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모든 걸 쌩깔 수 있었던 G팀의 열혈이 그립다.



사족.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신작건담에 좋은 평을 한 적이 별로 없는 어쩔 수 없는 우주세기빠라는 거겠지(담배)
by 스타더스트메모리 | 2008/01/10 14:48 | ZGMF-X42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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